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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느낌적인 느낌

9년 전에 쓴 '니카라과 사건'(Nicaragua Case) 관련 자료

by 엠제이스탁 2021.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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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전에 보관해놓은 자료들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제가 학부생 시절 작성했던 한 소논문(?) 자료를 발견하게 되었어요.

제가 본 전공은 영어영문학인데, 이중전공으로 법학 과목들을 수강했거든요. 그 때 한창 국제법 분야에 빠져있던 때이기도 했어요. 국제법을 공부하다 보면 1982년 니카라과 사건에 대해서 자주 접하게 되는데, 이게 판례 측면에서도 되게 중요한 사건이라는게 아직도 기억 속에 남아있을 정도에요 ㅎㅎ

 

제가 이 자료를 직접 기나긴 원문 판결문들을 찾아가며 자발적으로 작성했던건데, 당시 니카라과 사건 관련해서 국내 사이트들에서 구체적인 자료를 찾기가 되게 어려웠던걸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국제법학도분들께 도움이 될까 하여 해당 자료의 원본을 그대로 여기에 올려볼까해요. 많은 참고가 되셨으면 합니다.


I. 들어가며

 

   국제법을 공부하면서 국제사법재판소(이하 ICJ)의 주요 판례로 '니카라과 사건' (Case concerning Military and Paramilitary Activities in and against Nicaragua, 이하 ‘Nicaragua Case’ 또는 ‘니카라과 사건’)이 자주 언급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동안 수업을 들으면서 다수의 주요 ICJ 판례 중 중요한 여러 국제법원칙이 적용되어 있는 니카라과 사건이야말로 국제법적으로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추상적으로나마 알게 되었다. 그러던 중 문득 도대체 어떤 의미에서, 그리고 왜 그렇게 중요한 지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고, 여러 서적이나 인터넷 웹사이트 등을 찾아봐도 이 사건의 전말과 ICJ의 판결 과정 등을 상세히 서술한 자료는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시험 준비를 위한 정리차원 및 평소 국제법분야에 관심을 갖고 미래에 ICJ 재판관을 꿈꾸는 필자는 결국 ICJ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길고 긴 판결문을 읽고 정리하며 나름의 분석도 해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II. 사건 개요

 

   1979년 니카라과 공화국에서 반정부세력인 산디니스타 정권이 기존 세력인 소모자 정권을 전복시키고 신 정부를 수립하였다. 이에 따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코스타리카 등 주변국들 내에서도 반정부 게릴라의 활동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당시의 미국 정부는 니카라과의 신 정부를 지원하였으나 1981년 1월에 출범한 레이건 정부는 니카라과 정부가 엘살바도르의 반정부세력에 대해 지원을 하자 같은 해 12월 이후부터 니카라과의 반정부조직인 'Contras'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콘트라 반군은 소모자 정권의 지지자 및 신정부의 반대자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군사조직으로 온두라스와 코스타리카 주변부에서 활동하였다. 미국은 1983년 9월부터 다음 해 4월에 걸쳐 콘트라 반군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강화하였다. 미국 CIA의 지령과 지원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한 단체가 니카라과의 항만에 설치한 기뢰로 인해 다수의 니카라과 인들의 인명피해를 야기했고 제3국 선박에 대해서도 피해를 끼쳤다. 니카라과 정부는 미국의 침략행위가 본격화되고 있다고 하여 유엔 안보리에 해당 문제의 심의를 요청하였다. 1984년 4월 4일, 안보리에서는 미국이 니카라과 수역에 기뢰를 설치한 행위는 국제법 위반행위라는 결의안이 제기되었으나 미국의 거부권 행사로 부결되었다. 이에 따라 니카라과는 4월 9일, 미국의 책임 추궁을 위해 ICJ에 해당 문제에 관한 소송을 제기하였다.

 

1. 니카라과 측의 주장

 

   1) 미국은 콘트라 반군의 모집, 훈련, 장비, 재정 지원, 군사적 지원 등을 하였으며 무력사용 금지에 관한 UN헌장

제2조 제4항과 해당 국제관습법 상의 의무를 위반하였다.

   2) 미국은 니카라과의 주권을 침해하였고 국내문제에 간섭을 하였다. (주권평등 원칙, 타국의 국내문제 불간섭 원칙)

   3) 미국은 공해항해의 자유와 평화적인 해상통행을 방해하고 있다.

   4) 미국은 이러한 행위들을 즉시 중단해야 하며, 손해배상을 지불할 의무가 있다.

 

   더하여 니카라과는 동시에 미국에 대해 ICJ가 즉각적 행동중지를 명하는 임시조치(가 보전조치) 지시도 청구한 바 있다. 이에 대해 ICJ는 미국의 항변을 거절하고 1984년 5월 10일에 임시조치를 명하였다. 같은 해 10월 4일 ICJ는 엘살바도르의 소송참가 요청을 기각하였다.

 

2.  ICJ가 본 사안에 대해서 재판관할권을 갖는가의 여부

 

   사실 ICJ에 어떠한 소송들이 들어오든지 간에 가장 먼저 행해지는 것은 바로 '재판관할권 심사'이다. 즉, ICJ가 동 사안에 대해서 재판을 할 권리가 있는 지를 우선적으로 따져보는 것이다. 만약 관할권이 없다는 것으로 결정되면 본 사안은 기각되고 만다.

 

   1) 니카라과는 ICJ 관할권의 기초로서 ICJ규정 제36조 제2항에 기초하는 강제관할권 수락선언에 의거하였다. 니카라과는 PCIJ규정(PCIJ=국제연맹 시기의 사법기관으로 ICJ의 전신) 제36조 제2항에 기초하는 자국의 수락선언과 동 선언의 계속성을 인정하는 ICJ규정 제36조 제5항을 원용하였다. 또한 진술서에서는 1956년 니카라과-미국 간 우호통상항해조약을 관할권의 기초로서 원용하기도 했다. 니카라과는 1929년 PCIJ규정의 서명의정서에 서명하였고 무기한의 수락선언을 하였으나 국제연맹사무국에 동 의정서의 비준서를 기탁한 기록은 없었다. 단, 니카라과는 1945년 9월에 유엔 원 가맹국이 되었으며 같은 해 10월 24일에 ICJ규정이 발효되었다. 1946년 미국의 수락선언은 다자조약에 관한 분쟁 등을 유보하였고 동 유보는 5년 간 유효하며 그 후 6개월의 예고로 폐기될 때까지 효력을 갖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1984년 4월 6일 서한에서 유엔사무총장에게 자국의 선언은 중남미 분쟁에는 적용되지 않으며 이는 즉시 실시되어 2년간 그 효력을 갖는다고 통고하였다. ICJ는 ICJ규정 발효 시에 니카라과의 선언이 유효하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니카라과는 PCIJ규정 서명의정서의 비준서를 기탁하지 않아 그 수락선언에는 구속력이 없었으나 ICJ규정이 발효될 때까지 동 선언은 '무조건'이었기 때문에 무제한의 잠재적 효력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ICJ규정 기초자의 주된 관심 사항은 ICJ규정이 PCIJ규정의 계속성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니카라과는 ICJ의 연례보고서 등에서 강제관할권 수락국으로 간주되어왔으며 니카라과의 묵인은 이를 수용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2) 1984년 미국의 통고 효과에 관하여 가장 중요한 쟁점은 미국이 1946년의 선언에 첨부한 6개월의 통고조항을 일방적으로 변경할 수 있는 가이다. 미국은 자국의 선언을 수정, 종료할 권한이 있기는 하지만 어떠한 변경도 통고일로부터 6개월 후에 효과를 갖는다고 이미 선언하였기 때문에 선택조항을 수락한 타국에 대해서는 대항할 수 없다. 따라서 미국의 1984년 통고는 재판소의 강제관할권에 따라야 할 미국의 의무를 무효로 하지 못한다는 것이 ICJ의 입장이다.

 

   3) 미국은 선택조항 수락선언에서 다자조약에 대해 유보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니카라과는 UN헌장 및 미주기구헌장 등의 다자조약을 원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니카라과는 미국이 다자조약뿐만 아니라 다수의 국제관습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주장하였기에 단순히 다자조약을 원용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니카라과의 청구를 각하할 수 없다.

 

   4) 미국은 또한 다음과 같은 이유로 ICJ의 관할권 행사를 부정하고자 했다. 첫째, 본 사안은 유엔 안보리의 권한에 속하는 무력행사라는 것이다. 둘째, 미국의 무력행사는 UN헌장 제51조에 기초한 자위권 행사이다. 셋째, 본 사건은 ‘현재 진행 중’인 무력분쟁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ICJ는 동 분쟁이 안보리에서 계류 중이라는 이유만으로 방해 받지는 않으며, 안보리와 ICJ의 분쟁해결절차는 병행하여 수행될 수 있고, 니카라과의 청구는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목표로 한 것으로 적절하게 부탁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상의 사유들을 바탕으로 ICJ는 ICJ규정 제36조 제2항 및 제5항에 근거하여 니카라과 사건에 대한 재판관할권을 갖는다고 판시하였다.

 

3. 미국의 다자적 조약 유보의 쟁점

 

   상술(上述) 했듯이, ICJ가 사건을 다룰 시엔 우선적으로 ICJ의 재판관할권을 심사하며 관할권이 있다고 판단이 내려져야 그 사안은 '본 안(Merits)'으로 넘어가서 본격적인 판결이 시작된다. 이 절에서는 ICJ의 재판관할권 심사에서 문제가 되었던 미국의 '다자적 조약 유보'(Multilateral Treaty Reservation)에 관한 쟁점을 간단히 짚고 본격적으로 ICJ 본 안에서 니카라과 사건이 어떻게 다루어졌는지를 살펴본다.

   미국이 1946년 8월 26일에 ICJ규정 제36조 제2항(일명 '선택조항')을 수락할 때 다음과 같은 유보사항을 걸어놓았다. 즉, 해당 유보는 "판결에 의해 영향을 받는 조약 당사자들이 모두 ICJ 법정에서도 당사자가 되지 않거나, 또는 미국이 특별히 재판소의 관할권에 동의하는 경우가 아닌 경우, 다자 조약 하에서 일어난 모든 분쟁들을 배제"한다는 것이었다.

(원문 : a reservation excludes "disputes arising under a multilateral treaty, unless (1) all parties to the treaty affected by the decision are also parties to the case before the Court, or (2)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specially agrees to jurisdiction".)

   이와 관련한 재판소의 1984년 11월 26일 판결에서, ICJ는 유보조항에 근거한 '관할권 부정'은 사건 본 안과 관련한 본질적인 문제와 연관된 문제를 제기하였고 이 부정은 배타적으로 예비적인 성격을 지니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동 부정은 예비적인 성격과 본 안과 관련한 다른 여러 측면들도 가지고 있었기에 이는 사건 본 안에서 판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재판소의 관할권이 미국의 유보조항으로 제한되는 지를 따져보기 위해 ICJ는 제3국(니카라과가 언급한 네 개의 다자조약의 당사자이면서 현재 소송의 당사자가 아닌 국가)이 판결의 영향을 받는지를 확인해야 했다. 그 조약들 중 UN헌장과 미주기구헌장을 확인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ICJ는 판단한 것 같다.

   ICJ는 미국이 무력을 사용하였다고 하는 니카라과의 주장에 미국의 다자조약 유보사항이 영향을 미치는 가를 검토하였으며 특히 엘살바도르의 경우도 검토하였다. 즉, 미국이 주장하는 소위 '집단적 자위'(Collective Self-defence)행사가 미국의 행위를 정당화시킬 수 있는 가였다.(당시 미국은 니카라과로부터 공격을 받는 엘살바도르를 돕기 위해 자위권을 행사하였다고 주장했다.) 자위의 개념은 UN헌장 제51조와 미주기구헌장 제21조 등에 규정되어 있다. 이 분쟁은 따라서 미국, 니카라과 그리고 엘살바도르 모두가 당사국인 다자조약 하에 일어난 분쟁이다. 이에 따라 엘살바도르도 미국의 집단적 자위 행사 주장에 관한 판결로 영향을 받을 것이 자명하였으나 엘살바도르의 소송참가를 ICJ가 거절했기에 일단 당사국은 아니었다. 따라서 1) 미국은 재판관할권을 특별히 수락한 적이 없고, 2) 판결에 의해 영향 받을 국가들이 모두 다 소송의 당사자는 아니었기에(엘살바도르가 제외되었기 때문) 재판소는 미국의 유보조항이 본 사안에서 적용될 수 있음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이 유보사항은 ICJ가 원용할 수 있는 법원(Sources of Law)의 제한을 가져올 뿐, 관할권 전체를 부정하지는 못한다고 판시하고 조약 이외에 ICJ규정 제38조에 규정된 다른 법원들(국제관습법, 국제법의 일반원칙 등)을 원용할 수 있다고 판결하였고 특히 ICJ는 국제관습법 원용에 초점을 맞추었다.

 

III. 사건 본안(Stage of Merits)

 

1. 미국에게 귀속되는 위법행위들

 

   1) 재판소는 니카라과 항구, 해역에서의 기뢰 설치행위가 미국 군대 또는 미국으로부터 대가를 받은 라틴 아메리카 계열의 사람들이 저지른 행위라는 니카라과의 주장을 검토하였고 이것이 사실임이 밝혀졌다. 즉, 1983년 말 또는 1984년 초에 미국 대통령이 정부 대리인에게 니카라과 항구에 기뢰 설치를 승인하였고, 1984년 초에 El Bluff, Corinto, Puerto Sandino 등의 항구들에 다량의 기뢰들이 설치되었다. 이 행위들은 모두 미국 정부 대리인의 지시 하에, 또한 미국 요원들의 병참 지원, 그리고 감독 하에 이루어졌다. 이에 대해 미국은 기뢰 설치 전에 이와 관련한 어떠한 공식적인 통보 또는 경고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이 기뢰들로 인해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하였다.

 

   2) 니카라과는 원유시설, 해군기지에 대한 공격행위 등의 위법행위들도 미국 인사의 지시라고 주장하였다. 재판소는 이들 중 세가지 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사실임을 확인했다. 비록, 이러한 작전에 미국 군대 직원이 직접적인 관여를 했는지는 증명할 수 없으나, 미국 정부 대리인이 이러한 작전의 계획, 지시 그리고 지원행위에 가담하였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공격 행위들에 대한 미국에의 귀책성은 확정된 것으로 보인다.

 

   3) 니카라과는 미국 군용기들이 자국의 영공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재판소는 여러 증거들에 기초하여 미국에 귀속되는 영공침해 행위는 음속 폭음(sonic boom)을 내며 높은 고도에서 항행한 정찰기들과 저공비행을 한 군용기들의 비행이다.

   4) 재판소는 Contra 반군의 기원, 발전, 활동들에 대해서, 또 이들과 미국 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검토하였다. 니카라과의 주장에 따르면, 미국이 콘트라라고 불리는 용병 군대를 고안하여 조직하였다고 한다. 재판소는 여러 정보들에 의거하여 미국이 니카라과 내에서 콘트라 반군을 조직했다고는 볼 수 없으나 이들에 대해 대거 지원하였고 훈련시켰으며 장비 지원 등 여러 원조들을 했음을 인정했다. 또한, 니카라과 측은 미국 정부가 직접 콘트라 반군의 전술을 구상하였고 직접 전략 지휘를 하였으며 군사작전에 직접적으로 병력 지원을 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ICJ는 여러 증거들에 비추어 봤을 때   '모든' 작전들이 오로지 미국에 의해 조직되었다고는 볼 수 없으나 다수의 군사작전들이 미국과의 협력을 통해 결정, 계획되었음을 인정하였다. 또한, 재판소는 콘트라 반군의 활동에 대한 미국의 지원활동은 병참 지원, 산디니스타 군대의 이동, 위치에 관한 정보 제공 등 다양한 형태를 띠었음을 확인했다.

   재판소는 또한 미국 정부와 콘트라 반군과의 관계에 대해서 콘트라 반군이 미국 정부 산하 기관인지 또는 미국 정부를 대표해서 활동하는 것인지에 대해 판단해야 했다. 재판소는 콘트라 반군이 미국의 원조에 전적으로 의존했는지에 대한 증거가 부족함을 고려했다. 재판소 측은 동 반군이 전적으로는 아닐지라도 반군 지도자들이 미국에 의해 선정되었다는 점, 조직, 훈련, 장비 지원, 작전 계획, 표적 설정 등의 미국의 행위들을 고려했을 때 어느 정도의 의존성이 있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5) 위와 같은 결론에 이르자, 재판소는 콘트라 반군이 그들의 행위들에 대해서 책임이 남아 있다는 시각을 견지하였는데, 특히 동 반군의 인도주의 법 위반 행위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고 지적하였다. 미국에 대해서 법적 책임이 생기게 하기 위해선, 미국이 반군의 군사작전에 있어서 실질적인 통제권을 갖고 있었는지를 증명해야 했다.

   

6) 니카라과는 미국 정부에 의해 취해진 특정 경제적 제재 조치들에 대해서 책임을 추궁하고자 했다. 특히 니카라과 측은 이를 내정 간섭이라고 주장하였다. 즉, 경제 원조가 1981년 4월에 중단되었고, 미국이 니카라과의 융자 수단을 차단하였으며 1983년에 이르러서는 설탕 수입 쿼터가 90%까지 감소하였고 니카라과에 대한 통상금지정책 (Embargo)이 선언되기도 했다.

 

2. 니카라과 측에 책임이 있는 행위들?

 

   ICJ는 미국이 주장했던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니카라과 측에 책임이 있는 몇몇 사실들로 정당화될 수 있는지를 판단해야 했다.

 

   1) 미국은 니카라과가 이웃 국가들, 특히 엘살바도르 내에서의 무장 단체들을 무기 공급의 형태로 지원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였고 니카라과는 이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재판소는 우선적으로 엘살바도르에 대한 니카라과의 행동을 검토해야 했다.

   여러 증거들과 많은 정황들을 고려했을 때(대부분 니카라과 측에서 제공한 정보들이다) 재판소 측은 니카라과가 엘살바도르 내의 반군 단체에 대해 지원을 한 것이 1981년 초까지는 사실에 해당한다고 결론 내렸다. 그 이후에 대해선 증거가 미약하다고 했다. 그러나 재판소는 군수물자 수송 등은 없었다고 결론 내렸다. 즉, 재판소 측은 군수물자 수송에 대한 주장은 확고하게 정립된 것이 아니며, 1981년 초 이후에 중대한 규모의 수송이 있었다는 것을 확정하지 못한 것이다. 이와 관련한 주장들이 더 있으나 결론적으로는 모두 증거 불충분으로 끝이 났다.

   

   2) 미국은 또한 니카라과가 온두라스와 코스타리카에 대해서 국경 간 군사적 공격을 했다고 주장했다. 재판소는 특정한 국경 침해 행위들은 니카라과 정부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3) 미국은 산디니스타 정권이 소모자 정권이 천명한 "평화 보장 계획(Plan to secure peace)", "인권 준수", "자유 선거" 등의 사항들을 위반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즉, 미국은 이러한 행위들에 대해서 산디니스타 정권이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3. 적용 가능한 법 탐색 : "국제관습법"(Customary International Law)

 

   위에서 언급했듯이 ICJ는 미국의 수락선언의 다자조약 유보를 적용해야 한다고 결정했고 이에 따라 사건 심리에서 조약 적용은 제한되었고 대신 ICJ규정 제38조에 나열된 다른 법원들을 원용해야 했다. 본 사안에 대해서 적용할 법을 결정하기 위해서 재판소는 아직 적용 가능한 국제관습법의 내용 정의를 위해 다자조약의 적용가능성 배제가 불러올 결과를 우선 확인해야 했다. ICJ는 원용될 모든 관습법규칙들이 해당 조약들과 완전히 동일한 내용을 담는다고는 볼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설령 조약규칙, 그리고 그와 관련된 관습법규칙이 완전히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재판소가 조약 절차의 발동이 관습법규칙의 개별적 적용가능성을 꼭 박탈한다는 시각을 가져야 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즉, 요약하자면 재판소는 조약이 관습법규를 포섭하거나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고 관습법규칙은 오로지 조약규칙과 내용이 다른 경우에 한해서만 적용이 된다는 시각을 지닌 것이다. 사실, ICJ의 이러한 시각은 국제법상의 조약과 관습체제에 관해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즉, ICJ가 이 사건의 판결을 통해 조약과 관습법의 관계를 꽤 명료하게 규정하고 있는 셈이다.

 

4. 적용 가능한 구체적인 국제법들

 

   국제관습법을 원용하기로 결정한 ICJ는 이제 어떠한 법규들을 적용할 수 있는가를 따져보아야 했다. 이를 위해서 재판소는 관습법규칙이 국가들의 '법적 의식'(Opinio Juris)에 내재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국가 관행에 의해 확인이 되는지를 판단해야 했다.

 

   1) 무력사용금지와 자위권 행사에 관한 국제법규칙

       ICJ는 사건 양 당사자 모두가 UN헌장에 규정된 무력사용에 관한 원칙들이 국제관습법에 상응한다는 시각을 가졌음을 확인했다. 따라서 그들은 국제관계에 있어서 타 국가의 영토에 대해 또는 어느 국가의 정치적 독립성에 대해 강박 행위 또는 무력의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는 조약상 의무를 수락하는 셈이다. 그러나 ICJ는 그러한 자제사항들과 관련해서 국제관습법에는 '법적 의식'이 존재함을 인정했다. 이러한 법적 의식은 특정 유엔총회의 결의안 (특히 총회 결의 2625 (XXV)) 등에 대한 태도로부터 추론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러한 결의안들에 대한 동의는 국제관습법규칙으로도 간주되는 무력 사용 금지의 원칙에 대한 법적 의식의 한 표현이 되는 것이다. 무력사용금지 원칙이 국제관습법의 지위를 갖는다는 ICJ의 판결도 주목할 만하다.

   국제관습법 상에서 인정되는 무력사용금지에 관한 일반적 규칙은 특정한 예외사항을 두고 있다. 이는 즉, 관습법상에서도 확립된 개별적 또는 집단적 자위이며 이러한 자위권은 UN헌장 제51조에 규정되어 있으며 헌장에서는 이를 "내재적 권리"(Inherent Right)라 칭하고 있으며 유엔총회의 결의안 2625(XXV)에도 명시되어 있다. 이러한 권리가 국제관습법으로 확립된 것을 인정하는 당사자들은 공격에 대한 대응이 합법적인지의 여부는 필요성과 비례성의 기준에 부합하는가에 달렸다는 데에 동의한다.

   개별적이건 집단적 자위건 이는 오로지 '무력적 공격'에 대해서만 행사할 수 있다. 재판소의 입장에서 이는 단지 국제적 경계를 넘어선 정규군의 행동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타국에 군대를 파견하는 것도 포함된다.

   재판소는 무력적 공격의 개념이 반군세력에 대한 무기 지원, 병참 지원 등을 포함하지는 않는다고 본다. 게다가 재판소는 공격을 당한 국가의 요구 없이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허가하는 규칙이 관습법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시하며 피해국은 피해를 입었다고 선언을 해야 한다.

 

   2) 타국의 국내문제 불간섭원칙

      불간섭원칙은 모든 주권국가가 외부의 간섭 없이 국내문제를 자유롭게 처리할 권리를 내포한다. 동 원칙에 대해서 국가들이 법적 의식을 표현한 사례는 매우 많다. ICJ는 불간섭원칙이 미국과 니카라과가 참여한 여러 국제기구들과 회의에 의해서 다수의 선언들과 결의안에서 반영된 것을 확인했다. 재판소 측은 해당 원칙의 관습법상의 내용과 관련하여 이 사건과 연관성 있어 보이는 여러 구성요소들을 정의하였다. 즉, 금지된 간섭행위는 개별 국가들이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사안에 영향을 미치는 것과 다름없는데 가령, 정치체제 선택, 외교정책 구상 등에 간섭을 하면 안 되는 것이다. 특히, 강박, 또는 군사적 행동을 동원한 간섭행위는 '위법행위'를 구성한다.

   동 원칙에 관한 국가관행과 관련하여 ICJ는 그 동안 동 원칙에 관한 여러 사례가 있음을 확인했다. 따라서 재판소는 국가관행 상 어떠한 국가도 현재 국제관습법상 다른 국가에 있는 반대세력들을 지원하는 간섭행위를 할 권리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ICJ가 타국의 국내문제 불간섭원칙이 "국제관습법의 지위를 가진다"고 판시한 점이다.

 

   3) 무력에 이르지 않는 행동에 대한 집단적 대응조치

   재판소는 만약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 대해서 간섭행위를 할 때 제3국이 간섭국의 국내문제에 대한 내정간섭에 이르는 대응조치를 합법적으로 취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을 고려해야 했다. 즉, A,B,C국이 있다고 칠 때, A국이 B국에 간섭 시, C국이 A국의 내정간섭을 대응조치로써 할 수 있는 가이다. 재판소의 시각에서는 현행 국제법에 비추어 볼 때, 국가들은 무력적 공격을 구성하지 않는 행위에 대해서는 집단적 무력 조치를 취할 권리가 없다.

 

   4) 국가 주권평등의 원칙

   ICJ는 국가주권의 개념이 조약상, 그리고 국제관습법상 내수, 영해, 영공에도 미친다는 것을 상기했다. 즉, 미국 측의 기뢰 설치는 엄연한 해안국가의 주권침해 행위이다. 또한, 타국에 의한 기뢰 설치로 항구 이용이 방해될 경우 침해되는 것은 해상행위의 자유이다.

 

   5) 인도주의법 (Humanitarian Law)

   재판소가 보기에 어떠한 경고 또는 통보도 없이 타국의 수역에 기뢰를 설치하는 것은 위법행위일 뿐만 아니라 1907년의 헤이그 협약에 기초한 인도주의법 원칙도 위반하는 것이다. 이러한 고려는 재판소로 하여금 동 사안에 적용 가능한 국제인도주의법을 검토하게 했다. 니카라과는 비록 직접적으로 국제인도주의법의 조항들을 원용하지는 않았으나 그러한 사항을 위반한 것과 다름없는 자국 영토상의 미국의 행위들에 대해서 불만을 표한 바 있다. 니카라과 측의 진술서에는 미국이 니카라과인 들에게 살상행위, 납치행위 등을 저질렀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콘트라 반군에 의해 행해진 행위들을 미국에 귀속시키기 위한 목적에 대해서 증거가 불충분하여 ICJ는 이 진술서를 기각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콘트라 반군의 행위와 관련한 미국의 행동에 적용 가능한 법에 관한 문제가 남아있다. 비록 니카라과가 1949년 4개의 제네바협약을 원용하지 않았지만(미국과 니카라과 모두 제네바협약 당사자이다), 재판소는 동 협약의 제3조(국제적 성격을 갖지 않는 무력 충돌에 적용됨)가 적용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또한 미국은 제네바협약에 따라 협약 내용을 '존중하고' 또한 '존중을 확보할 의무'가 있으며 그러므로 니카라과 내에서 무력 분쟁에 개입된 개인들이나 집단들이 제3조의 위반을 막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6) 니카라과-미국 간의 1956년 우호통상항해조약

   1984년 11월 26일 판결에서 ICJ는 1956년 1월 21일에 Managua(니카라과의 수도)에서 맺어진 우호통상항해조약의 적용 또는 해석에 관련하여 미국과 니카라과 사이의 분쟁의 존재와 관련한 의견을 개진할 권능이 있다고 결론 내렸다. 다시 말하자면, ICJ는 양국의 우호통상항해조약을 본 사건에 대한 재판관할권의 근거 중 하나로 본 것이다. 재판소 측은 해당 조약 중 특히 제21조 제 1(c)항과 제1(d)항을 포함한 여러 조문들의 의미를 결정해야 했다.    

이상이 ICJ가 본 사건에서 적용하고자 하는 국제법규칙들이다. 다음 장에서는 위의 국제법규칙들이 실제로 니카라과 사건과 관련한 여러 사실들에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그 최종 판결과 판결 이후를 알아보면서 글을 마치고자 한다.

 

국제사법재판소(ICJ) 전경 (출처 : Google)

 

IV. ICJ의 국제법원칙 적용

 

           본 장에서는 ICJ가 뽑은 몇 가지 국제법원칙들을 이 사건과 관련하여 어떻게 적용하였는지를 살펴본다.

 

1. 무력사용금지의 원칙과 자위권

 

   재판소에 따르면, 미국이 그들의 위법성을 조각하는 상황으로 정당화되지 않는 한, 니카라과 항구와 원유시설, 해군기지 등에서 기뢰를 설치한 행위가 무력사용금지원칙을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한, 재판소는 미국이 콘트라 반군에 대해 군사적 지원과 훈련 등을 한 행위도 자위권 행사로 정당화되지 않는 한 이 행위도 일견(prima facie) 무력사용금지의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재판소는 니카라과 국경 근처에서 미국에 의해 행해진 군사이동이나 콘트라 반군에의 지원행위가 무력사용에 이르는 행위는 아니라고 판시했다.

   ICJ는 또한 동 원칙의 위반행위가 집단적 자위권 행사로 정당화되는지를 판단해야 했고, 또한 자위권 행사요건 등이 충족되었는지도 보아야 했다. 우선, 첫 번째와 관련해서 재판소는 우선적으로 니카라과가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또는 코스타리카에 대해 무력사용행위에 가담했는지를 확인해야 했는데, 이는 그러한 무력적 공격행위만이 자위권 행사를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엘살바도르와 관련해서 ICJ는 타국가 내에 있는 반대세력에 무기를 지원하는 것은 국제관습법상 무력공격을 구성하지는 않는다고 보았다. 온두라스와 코스타리카와 관련해서 재판소는 니카라과가 그들 두 국가 영토의 경계 간 진입에 관한 충분한 정보가 없을 시엔 그러한 진입 행위가 무력적 공격에 이른다고 판단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따라서 ICJ는 이 두 가지 이유들 모두(진입행위와 지원행위)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정당화하지 못한다고 판시하였다.

   두 번째로, 미국이 주장하는 자위권 행사가 정당화되는 지 보기 위해 재판소는 자위권 행사를 위한 여러 정황들이 충족되었는지를 확인해야 했고, 그에 따라서 또한 재판소는 논의가 되고 있는 국가들이 자신들이 니카라과에 의한 무력적 공격의 희생자라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집단적 자위권 행사 차원에서 미국에게 지원을 요청하였는지를 고려해야 했다. 결론만 말하자면, 재판소는 이와 관련한 어떠한 증거도 발견하지 못하였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행위와 관련한 '필요성과 비례성'(necessity and proportionality)에 관해서 재판소는 논의가 되고 있는 행위들이 필요성에 입각하여 행해진 것이 아니며 몇몇 행위들은 비례성의 요건에도 위배된다고 판시하였다.

   결론적으로, 미국 측에 의해 주장된 집단적 자위권에 관한 항변은 지지될 수 없었고 미국은 위에서 설명한 행위들로 인해 무력사용에 관한 원칙을 위배한 것으로 판결이 내려졌다.

 

2. 타국의 국내문제 불간섭원칙

 

   ICJ는 미국이 개별국가가 자유롭게 결정할 권한을 가지는 문제들에 관해서 니카라과에 대해 명백한 강박행위를 하였고 또한 콘트라 반군 자체의 의도가 니카라과의 정부를 전복시키는 것이었다고 확언하였다. 재판소는 한 국가가 타국가의 강박을 위해 강박 대상국에 있는 반군조직을(정부 타도가 목표인 반란세력) 지원하는 행위를 하면 그것은 지원국의 정치적 목표와 상관없이 해당 국가에 대한 내정간섭에 이르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재판소는 미국이 니카라과 내에 있던 콘트라 반군의 군사적, 준 군사적 활동에 대해 재정적 지원, 무기 지원, 병참 지원, 훈련 행위를 한 것들은 모두 불간섭원칙을 위배한 것이라고 판시하였다. 단, 재판소는 인도주의적 원조는 위법적 간섭행위로 간주될 수 없다고 언급하였다. 1984년 10월 1일부터 미국 의회는 예산의 일부를 콘트라 반군에 대해 소위 "인도적 지원" 기금으로 전환하였다. 이에 대해 재판소는 만약 미국의 "인도적 지원"의 제공이라는 행위로 미국이 타국에 대한 내정간섭 행위에 대한 비난으로부터 탈피하고자 한다면, 그러한 지원은 오로지 국제적십자사(Red Cross)의 관행 등에서 존중되어온 인도주의적 목적에만 국한되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차별 없이 그러한 지원이 주어져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미국이 니카라과에 대해 행한 경제적 성격의 '간접적 간섭행위'에 대해서 재판소는 현 사안에서 그러한 행위를 국내문제 불간섭원칙의 위반이라고 간주하기 어렵다고 언급하였다.

 

3. 무력적 공격에 이르지 않는 행위에 대한 집단적 대응조치

 

   타국의 국내문제에 대한 간섭행위는 무력 사용을 포함한 집단적 대응조치를 발동할 권리를 창출하지 못함을 확인한 바, ICJ는 니카라과에 대해서 고발된 행위가 제3국, 즉 미국에 의한 대응조치권을 정당화할 수 없고 특히 무력 사용을 포함한 간섭행위는 더더욱 정당화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4. 국가주권

 

   ICJ는 미국의 콘트라 반군 지원, 니카라과 항구와 원유 시설 등에 가한 직접적 무력공격, 니카라과 항구 주변에서의 기뢰 설치작업, 무력 사용을 포함한 간섭행위는 모두 영토주권 존중에 관한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고 판시하였다. 동 원칙은 또한 미국 군용기가 허가 없이 니카라과 영공을 비행한 행위에 의해서도 침해되었다. 이러한 위법행위들은 엘살바도르에서 니카라과에 귀속되는 행위들에 의해 정당화될 수 없다고 재판소는 언급하였다. 또한 재판소는 미국의 기뢰 설치작업은 니카라과 근처 해역에서의 운송과 해상행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5. 인도주의법

 

   ICJ는 미국이 니카라과 항구 근처에 기뢰를 설치했다는 것을 통보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또한 재판소는 미국이 니카라과 내의 분쟁에 가담한 사람들 또는 집단들이 1949년 4개의 제네바협약 공통 제3조를 위반하는 것을 자제시켜야 할 의무가 있었다고도 판시하였다.

 

6. 1956년 우호통상항해조약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니카라과는 미국이 1956년에 양국간에 체결된 우호통상항해조약을 위반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즉, 니카라과에 따르면 미국이 동 조약의 목표를 침해했다는 것이다. 재판소는 미국의 이러한 행위가 '미국의 필수불가결한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조치'(measures necessary to protect the essential security interests of the United States)일 경우 니카라과의 주장을 지지할 수 없다고 했는데, 이는 동 조약의 제21조가 이 조약이 그러한 조치들의 적용을 막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판소는 니카라과가 주장한 미국의 조약침해행위 전부를 볼 수 없으나 본 조약의 정신을 침해하는 특정한 행위들이 있다고 판단했다. 즉, 니카라과 항구 주변에의 기뢰 설치, 항구와 원유 시설 등에 대한 직접적 공격행위, 통상금지정책(Embargo) 등이 그것이다.

   또한 재판소는 기뢰 설치가 본 조약에 규정된 통상과 항행의 자유를 명백히 침해한 것이라는 니카라과의 주장을 지지하였다. 또한, 재판소는 미국이 1985년 5월 1일에 행한 통상금지정책도 동 조약을 위반한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따라서 ICJ는 미국이 1956년의 조약을 침해하지 않을 조약상 의무를 일견(prima facie) 침해하였다고 보았고, 조약의 규정들에 모순되어 행동하였다고 판시하였다. 그러나 재판소는 '조약 당사국의 필수불가결한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치'와 관련한 제21조에서 미국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예외사항이 제기될 수 있는지를 고려해야 했다. 여러 가지 자료들을 검토한 후, 특히 1985년 5월 1일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 직접 내린 대통령 명령(Executive Order) 등의 자료를 기반으로 재판소는 기뢰 설치, 주요 시설에 대한 무력공격, 통상금지정책은 미국의 '필수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고 최종적으로 판결을 내렸다.

 

7. 니카라과의 배상요구

 

   니카라과는 미국 측에 배상금 지불을 요구하였다. 일단 ICJ는 니카라과의 배상요구를 받아들였고 배상금의 액수는 추후에 다시 결정하되 잠정적인 배상금으로 약 3.7억 달러를 지급하는 것으로 판시했다. 이러한 조치를 취한 과정을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ICJ가 미국에 대해 배상금 지불을 명령할 재판관할권을 확인한 후, 동 재판소는 배상의 성격과 액수를 위해 니카라과의 요구사항이 본 소송절차의 추후단계에서 결정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재판소는 ICJ규정이 재판소에게 잠정적 배상금(interim award)을 책정할 권능을 부여하거나 또는 그러한 권능을 제재하는 규정이 없다는 것을 고려하였다. 특히, 소송 당사자 중 한 쪽이 출석하지 않을 시엔, 재판소는 협상과정에서 장애가 될 불필요한 행동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따라서 재판소 측은 '현재 단계에서는'(at this stage) 니카라과 측의 주장을 곧바로 받아들이는 것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언급한 것이다. 추후에 ICJ는 미국 측에 배상금 지불을 명령하였다.(그리고 미국은 이를 그냥 무시해버렸다.)

 

8. 분쟁의 평화적 해결; 콘타도라 절차(the Contadora Process)

 

   현 사안에서 재판소는 이미 콘타도라 절차에 주목하였고 또한 그것이 이미 유엔 안보리와 유엔 총회, 그리고 미국과 니카라과의 보증을 받았음에 주목하였다. 재판소는 현 사안에 대해서 양 당사자에게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규정하는 국제관습법원칙과 일치하는 방향으로 중앙아메리카의 영구적 평화를 추구하면서 콘타도라와 협력할 것을 상기시켰다. 분쟁의 평화적 해결 원칙은 UN헌장 제33조에도 규정되어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ICJ가 불간섭원칙과 마찬가지로 분쟁의 평화적 해결에 관한 원칙이 '국제관습법의 성격을 지닌다'고 판시한 점이다.

 

cf. Contadora Process: 1983년 1월에 멕시코,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파나마의 외교영사들이 파나마 만에 있는 콘타도라 섬(Contadora Island)에 모여 회의한 것에서 유래하는 일종의 중앙 아메리카의 평화에 관한 협의체제이다.

 

V. 판결 이후

 

   위에서 언급했듯이, 미국은 ICJ의 손해배상 명령을 거절하였다. 이로 인해 니카라과는 본 사안을 유엔 안보리에 회부했지만 상임이사국인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하였다. 니카라과는 다시 유엔총회에 호소하였고 압도적 지지로 결의안이 통과되었으나 사실 유엔총회의 결의안은 법적 구속력은 없는 것이고 권고적 효력만 있는 것이어서 실로 별 효과가 없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결국 니카라과 사건에 관한 사안은 1990년 산디니스타 정권이 무너지면서 종결되었다. 즉, 니카라과의 신정권이 미국으로부터 거액의 원조금을 받는 대가로 1991년에 ICJ 제소를 취하한 것이다.

 

VI. 맺으면서

 

   서두에서도 말했듯이 국제법 책을 보면 니카라과 사건이 정말로 많이 언급된다. 필자가 저번학기 때 들은 국제법총론을 공부할 때도 니카라과 사건이 언급이 되지 않는 단원을 찾기 힘들 정도로 자주 언급되었고 지금 국제법각론을 듣고 있는데 역시나 니카라과 사건은 또다시 등장했다. 하지만 정작 필자 자신은 니카라과 사건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했다. 물론 대략적인 사건 개요나 판결의 요지 정도는 수박 겉핥기 식으로 알게 되긴 했으나 그래도 판결 과정에서의 재판 논리, 양 측의 주장 등도 너무나도 궁금해했다. 그러던 찰나에 나는 인터넷 여기저기에서 니카라과 사건에 대해 찾아봤으나 국내 웹사이트에서는 도무지 니카라과 사건에 대해서 낱낱이 알 수 없었다. 결국 필자는 원치 않았던 길을 택하게 되었고 ICJ 공식 홈페이지를 방문하여 니카라과 사건과 관련한 판결문을 찾게 되었다. 역시 한글 번역본은 존재하지 않았다. 본 사안은 워낙 유명한 사건임과 동시에 또한 유달리 복잡한 사건인 것으로 정평이 나 있었는데 역시 소송 과정도 매우 복잡하였고 그 과정에서 나온 판결문들의 양도 어마어마했다. 그래도 큰맘 먹고 시작한 것이어서 필자는 판결문들을 우선적으로 번역하는 작업부터 시작하였고 그것들을 순서대로 정리하고 나머지 사건 개요나 판결 이후의 상황은 다른 서적이나 웹사이트 등을 참고하여 작성하였다. 번역 작업은 역시 예상대로 쉽지는 않았다. 원문 판결문을 번역하고 정리하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글에서 언급한 내용들은 판결문의 전체를 그대로 번역해서 올려놓은 게 아니고 불필요한 부분들은 삭제하고 나름대로의 정리 과정을 거친 것이다.

   보다시피 본 사건에서는 많은 국제법원칙들이 원용되었고 대부분이 흔히 '국제법의 일반원칙'이라고 불리는 것들이다. 위에서 강조했듯이, 타국의 국내문제 불간섭원칙과 분쟁의 평화적 해결원칙이 ICJ의 판결에 의해서 국제관습법의 지위를 가졌음이 재차 확인된 것은 국제법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ICJ의 사법판결이 비록 보조적 수단의 법원(Sources of law) 이긴 하지만 법원(Sources of law)에 실로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본 사건에 대해서 ICJ는 무력사용의 개념과 자위권의 개념도 꽤 명료하게 규정하였고 조약과 국제관습법의 관계, 그리고 국제관습법의 요건 등에 대해서도 언급하여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어쩌면 이러한 국제법상 중요한 원칙들이 하나도 아닌 여러 개가 니카라과 사건에서 다뤄졌기 때문에 본 사안이 국제법 교재에서도 여러 번 인용되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ICJ의 이러한 명 판결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단번에 이러한 길고 긴 판결을 무시해버린다. 또한, 본 사안에 대한 판결 중 반대의견을 낸 판사들이 미국, 영국, 일본 출신인 것을 보아도 강대국의 입김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또다시 알 수 있었다. 실제로, 판결문을 보면 사안마다의 결정이 소개되고 그 결정을 지지한 판사들과 반대한 판사들의 이름이 나오는데, 대부분의 반대의견들은 미국, 영국, 일본 출신의 판사들의 의견들임을 알 수 있다. 역시 강대국의 위상이란 이런 것 인가 보다. 어쩌면 이러한 것이 현행 국제법의 한계가 아닌가 싶다. 사법적 판결이 나와도 법 이행이 미약한 것이 아직까지도 현실인 것 같다. 이는 점차 개선해야 할 국제법의 숙제일 것이다.

 

참고자료

 

Antonio Cassese, 강병근 ∙ 이재완 譯, 『국제법』, 삼우사, 2010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726742&cid=2585&categoryId=2585

http://www.ICJ-cij.org/docket/files/70/9615.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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